2020학년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서과 합격수기-⑤
2020학년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서과 합격수기-⑤
처음으로 통번역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하다 보면 국내파라 하더라도 내가 한국어를 이렇게 못하는구나, 내가 배경지식이 이렇게 부족하구나, 내가 글을 이렇게 못 쓰는구나, 한국말인데 왜 딱 맞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지 등과 같은 예상치 못한 자괴감에 빠지게 되실 수 있습니다. 저도 물론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몇몇 부분에 있어 의도치 않게 경험적으로 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경제학도로서 습관적으로 경제신문을 긴 시간 구독하고 있었고, 그간 사회생활을 통해서 얻은 경험적 지식과 전공지식이 입시 전반에 걸쳐 풍부한 자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종합상사에서 근무한 기간 동안 작성한 많은 보고서, 결재 및 이메일, 크고 작은 회의 참석과 회의록 작성 등을 통해서 저도 모르는 사이 일정 수준의 국문 작문능력 및 어휘 활용능력이 배양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입시준비 기간에도 꾸준히 이를 지속했었는데, 조금 더 활용도를 높이자는 차원에서 영어가 비교적 자유로운 친구와 흥미 있는 분야의 국문 도서를 선정해서 2~3주에 한 번씩 사전에 해당 도서를 읽고 한국어 또는 영어로 독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입시준비 기간에는 한국/세계의 사회 및 경제현상, 4차 산업혁명 등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었는데, 비록 토론을 서어로 하진 않았지만 국문으로 쓰여진 내용을 외국어 또는 국문으로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통번역식 사고와 인성 면접 준비에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언론기사보다 폭넓고 심도 있는 배경지식, 그리고 언론의 의견이 아닌 ‘나만의 의견’과 유연한 사고를 갖추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다룬 ‘90년생이 온다’라는 도서 관련된 내용 또한 수업 전에 이미 읽었던 책이었던지라 내심 반가웠던 기억이 있네요. 다만, 주의할 점은 이와 같은 작업이 절대 모두에게 도움이 되거나 효율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입시 준비 전략으로 추천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저에게도 가끔 친구와 함께하는 단순한 주말 취미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말씀들을 드리는 이유는,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고 스페인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회경험을 하고 왔다는 것이, 국내파라는 것이, 그리고 비전공자라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페인어까지 잘하면 물론 베스트이지만, 면접현장에서 도입부에 서어 답변을 조금 못했다고 기죽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마지막까지 한국어를 통해서 월등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시면 마지막에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 나오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통번역대학원 입시라고 해서 스페인어 실력만 중요한 게 아니고 간단히 반으로 딱 잘라 말해도 한국어의 중요성은 50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국어가 한국어라도 본인의 한국어 발화 및 작문실력이 충분한지도 한 번 생각해보실 만한 부분이고, 국내파가 스페인어에만 집중하면 한국어 작문 및 발화 능력이 부족할 시 두 언어 모두에서 어정쩡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차는 2시간, 2차는 단 20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그간의 노력의 결과물을 집약해서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시험 및 면접 당일의 운과 컨디션, 정서관리 능력 또한 결과에 있어 실력과 노력만큼이나 비중 있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듯, 입시기간 동안 기울인 노력과 실력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현장에서 아웃풋으로 발현되지 못하면 부득이 과소평가를 받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어떤 분들은 나이 먹고 시작해서 짧은 기간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을 두고 제가 재능충 계열의 인간이라서라던가,, 또는 반대로 ‘통번역대학원 입학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가 보다’라고’ 판단하실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단지 타 언어 학습을 위한 어학연수들을 사전에 경험했었기 때문에 저에게 잘 맞는 연수 방식과 외국어 학습법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고, 운 좋게도 배경지식과 국문 작문능력이 일정 수준 배양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통대 준비생분들 앞에서 언어재능 내세울 만큼의 인간은 절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학원을 다니면서 정말 놀란 부분 중 하나는, 많게는 저보다 10살이나 어린 친구들이 스페인어는 물론이고 배경지식에도 해박하고 글도 명료하게 잘 쓰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 친구들 나이 때는 뭘 하고 있었더라’, ‘정말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을(하고 있을)까’, ‘기특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 당시의 저는 시사이슈에는 별 관심도 없던 우물 안 0개국어 개구리였던 것 같습니다. 종강하는 그날까지도 진심으로 그들의 능력과 노력, 학구열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었던 기억이 나네요.